TL;DR — 1인 회사 + AI 에이전트 체제로 일합니다. 매일 아침 7시, AI가 회사를 한 바퀴 돌고 보고서 1장을 남겨요. 어제 일 정산, 서비스 생존 확인, 보안 순찰, 메일·일정 선별, 정부 지원사업 공고 판독, 오늘 할 일 제안까지. 핵심은 기능이 아니라 원칙이었어요 — 읽기만 한다, 되는 것만 보고한다, 제안과 결정을 분리한다, 열쇠는 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기록은 덮어쓰지 않는다.


혼자 회사를 굴리면 아침이 제일 바빠요. 밤새 서비스가 살아있었는지, 어제 벌인 일이 어디까지 갔는지, 메일함에 폭탄은 없는지, 놓친 지원사업 마감은 없는지 — 커피 마시기 전에 머릿속에서 점호를 도는 거죠. 이걸 매일 사람이(=제가) 하는 게 맞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AI한테 시켰어요. 지금은 매일 아침 7시에 에이전트가 이 순서로 회사를 한 바퀴 돕니다.

  1. 어제 정산 — 밤사이 쌓인 작업 기록(커밋, 작업 로그)을 읽고 "어제 우리 회사가 한 일"을 몇 줄로 요약. 멈춰 있는 일, 누가 어디서 막혔는지도 뽑아요.
  2. 지표 판독 — 방문자·검색 유입 통계를 읽고, 숫자 나열이 아니라 해석을 답니다. 급변하면 원인 가설 한 줄을 붙이고요.
  3. 생존 확인 — 라이브 서비스들에 직접 접속해서 살아있는지, 느려졌는지 확인.
  4. 보안 순찰 — 최근 코드 변경분에서 열쇠(API 키 같은 것)가 실수로 새어나간 흔적을 스캔.
  5. 메일·일정 선별 — 받은 메일 중 결제·인증·마감 통지만 골라내고, 오늘 일정과 충돌을 표시. 광고는 버려요.
  6. 공고 판독 — 정부 지원사업 공고를 받아와서 우리 회사가 자격이 되는지 1차 판정, 마감 임박 건은 빨간 표시.
  7. 보고서 1장 — 이걸 전부 한 장으로 압축해서 남겨놓습니다. 마지막엔 "오늘 하면 좋은 일 3~5건"을 제안해요.

출근해서 그 한 장을 읽으면, 머릿속 점호가 끝나 있어요. 그런데 오늘 적고 싶은 건 이 기능 목록이 아니라, 이걸 설계하면서 정한 원칙들이에요. 기능은 누구나 붙일 수 있는데, 사고를 안 치게 만드는 건 원칙이더라고요.

원칙 1. 아침 순찰은 읽기만 한다

제일 먼저 정한 규칙이에요. 이 루틴은 메일을 읽지만 답장하지 않고, 일정을 보지만 만들지 않고, 코드를 스캔하지만 고치지 않아요.

이유는 단순해요. 읽기 실수는 보고가 틀리는 걸로 끝나지만, 쓰기 실수는 세상에 나가요. 잘못 읽은 건 제가 다시 읽으면 되는데, 잘못 보낸 답장은 회수가 안 되잖아요. 자동화의 권한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실수했을 때의 피해 반경"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게 지금의 결론이에요.

원칙 2. 되는 것만 보고한다

AI한테 보고서를 시키면 제일 무서운 게 그럴듯한 거짓말이에요. 접속이 안 됐는데 "정상으로 보입니다"라고 쓰는 것.

그래서 규칙을 박았어요 — 확인한 것만 쓴다. 확인 못 한 건 "확인 불가"와 그 이유를 쓴다. 실제로 보고서에 "점검 불가(환경 제약)" 같은 줄이 그대로 올라와요. 처음엔 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이 줄이 제일 신뢰가 갑니다. 불가를 정직하게 쓰는 보고서여야 "정상"이라는 글자도 믿을 수 있더라고요.

원칙 3. 제안과 결정을 분리한다

보고서 끝의 "오늘 할 일 제안"은 딱 거기까지예요. 제안은 AI가, 결정은 사람이. AI가 "이거 급해 보이니 제가 처리해뒀습니다"를 시작하는 순간, 저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게 돼요.

순서가 중요해요. 판단을 맡기는 건 신뢰가 쌓인 다음이고, 신뢰는 매일 아침 제안의 품질을 사람이 채점하면서 쌓여요. 지금 몇 달째 채점 중인데, 제안 품질이 올라오는 게 보여서 — 언젠가 일부는 위임하게 될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그건 제가 결정해서 넘기는 거지, 슬그머니 넘어가는 게 아니어야 해요.

원칙 4. 순찰 도는 AI한테 열쇠를 들려주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제일 고민한 부분이에요. 통계를 읽으려면 인증 열쇠가 필요한데, 이 루틴이 도는 환경은 열쇠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답은 수집과 판독의 분리였습니다. 새벽에 열쇠를 가진 별도 자동화(금고가 있는 환경에서 도는)가 데이터만 수집해서 갖다 놓고, 아침의 AI는 열쇠 없이 그 데이터를 읽고 해석만 해요. AI가 만능이어야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역할을 자르니 열쇠 문제가 사라졌어요.

원칙 5. 기록은 덮어쓰지 않는다 — 사고에서 배운 것

정직하게, 사고도 있었어요. 어느 날 수집 자동화가 한 번 더 실행됐는데, 두 번째 실행 때 외부 API가 빈 응답을 줬어요. 그러자 첫 실행이 모아둔 공고 3건을 "수집 건 없음"으로 덮어써버렸습니다. 멀쩡히 수집된 데이터가 몇 시간 뒤에 증발한 거예요.

다행히 다음날 아침 순찰이 전날 기록과 대조하다가 "어제 있던 3건이 왜 없지?"를 잡아냈고, 복원했어요. 교훈은 두 가지였습니다.

  • 자동화는 '있던 것'을 지울 수 있는 구조면 언젠가 지운다. 수집은 덮어쓰기가 아니라 보존 우선이어야 해요.
  • 자동화를 감시하는 건 또 다른 자동화가 아니라,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는 눈'이다. 그 눈이 사람이든 AI든, 시계열 대조가 최후의 안전망이에요.

비서를 고용한 게 아니라, 산책을 시키는 거예요

이 루틴을 만들고 나서 제 아침이 어떻게 바뀌었냐면 — 점호가 사라지고 판단만 남았어요. "뭐가 있었지?"를 수집하는 30분이 없어지고, "그래서 오늘 뭘 하지?"부터 시작해요.

누가 물어보면 비서를 뒀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비서라기보다 매일 아침 회사 둘레를 도는 산책에 가까워요. 산책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요. 문제가 있다는 걸 알려주죠. 해결은 여전히 낮의 일이고, 사람과 에이전트가 같이 합니다.


1인 회사나 작은 팀 운영하시는 분들 — 아침에 머릿속으로 도는 점호, 목록으로 적어보세요. 그게 그대로 루틴 명세가 됩니다. 그리고 만들 때 기능보다 금지부터 정하세요. 저는 "읽기만 한다"가 전부의 시작이었어요.

비슷한 루틴 굴리시는 분 있으면 어떤 원칙을 세우셨는지 궁금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쓴이는 사진 일을 거쳐 지금은 AI 도구로 작은 사업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