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DR — 혼자 AI랑 작은 사업을 굴리면서, 유입을 늘리려고 블로그를 부지런히 썼어요. 100편이 넘었죠. 그러다 큰맘 먹고 전수 분석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충격적인 게 보였어요. 재작년에 쓴 글이, 올해 같은 주제로 새로 쓴 글보다 수십 배 많이 읽히고 있었던 거예요. 새 글은 왜 안 뜰까 봤더니 — 제가 쓴 옛날 글이 그 자리를 이미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내 글이 내 글을 잡아먹는 것. 이걸 '자기 카니발리제이션(self-cannibalization)'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오늘은 그 발견기입니다.
저는 사진 일을 20년 했어요. 지금은 어쩌다 AI를 데리고 혼자 작은 회사를 굴립니다. 그러다 보니 마케팅도 제 몫이 됐어요. 예산은 없고 시간은 있으니, 답은 하나였죠. 글을 쓰자.
그래서 썼어요. 매일 한 편씩, 꾸준히. "검색에 걸리려면 콘텐츠가 많아야 한다"는 말을 믿었거든요. 실제로 그렇게들 말하잖아요. 양이 쌓이면 어느 순간 유입이 터진다고. 그래서 저는 편수를 KPI로 삼았어요. 오늘 한 편 썼나? 됐어. 내일도 한 편. 그렇게 100편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게 진짜 효과가 있긴 한 걸까 싶더라고요. 편수는 자랑스러운데, 그래서 사람이 진짜 오나? 확인을 안 해봤어요.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루 날을 잡고, 100편 전부를 한 줄로 늘어놓고 조회수를 매겼습니다. 전수 분석이요.
1. 상위 몇 편이 거의 전부를 먹고 있었어요
첫 번째 충격. 글의 절반 이상은 사실상 아무도 안 읽고 있었어요. 조회수를 줄 세워보니 상위 다섯 편 정도가 전체 조회의 절반을 넘게 가져가고 있었죠. 나머지 90편 넘는 글들은 한 자리, 두 자리 조회수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이게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콘텐츠는 원래 이렇게 '롱테일'로 쏠립니다. 소수의 글이 대부분의 트래픽을 가져가는 건 흔한 패턴이죠.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왜 어떤 글은 뜨고 어떤 글은 안 떴는가. 저는 다 비슷한 정성으로 썼거든요.
제목을 하나하나 비교했어요. 그랬더니 패턴이 보였습니다. 뜬 글들은 제목에 완결 신호가 있었어요. "이거 하나면 끝", "이것만 알면 안 떨어져요" 같은. 읽는 사람이 "아, 여기서 답이 끝나겠구나" 하고 느낄 만한 신호요. 같은 주제라도 이 신호가 있는 제목과 없는 제목은 조회수가 두 배 가까이 갈렸어요. 제목 한 줄 차이로요.
여기까지는 '아, 제목을 더 잘 써야겠다' 정도의 교훈이었어요. 진짜 아픈 건 두 번째였습니다.
2. 내 글이 내 글을 잡아먹고 있었어요
같은 주제로 쓴 글이 여러 편 있었어요. 인기 주제니까 여러 번 공략한 거죠. 당연히 그중 최신 글이 제일 잘 나갈 거라 생각했어요. 제일 정성 들여 썼으니까.
그런데 반대였습니다. 재작년에 대충 쓴 옛날 글이, 올해 각 잡고 쓴 새 글보다 수십 배 많이 읽히고 있었어요.
왜? 검색 엔진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어요. 같은 검색어를 노린 글이 내 안에 두 개 있으면, 엔진은 둘 중 하나만 위로 올려요. 나머지 하나는 뒤로 밀리죠. 그런데 옛날 글은 이미 몇 년 동안 링크도 쌓이고 신뢰도 쌓였어요. 신참 글이 아무리 잘 써도, 자기 형한테 밀리는 거예요. 내가 만든 글이, 내가 만든 다른 글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겁니다.
이걸 자기 카니발리제이션이라고 부른대요. 내 콘텐츠가 내 콘텐츠를 잡아먹는 것. 저는 새 글을 쓸 때마다 유입이 '더해진다'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어떤 경우엔 기존 글의 순위를 갉아먹으며 전체를 제로섬으로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3. 판별 기준은 '주제'가 아니라 '검색어'였어요
여기서 제가 오래 헷갈렸던 걸 짚고 갈게요. 처음엔 "같은 주제로 여러 번 쓰지 말자"로 정리했어요. 그런데 그건 틀린 규칙이었어요.
같은 주제라도 사람들이 검색창에 실제로 치는 말이 다르면 서로 안 잡아먹어요. 예를 들어 '증명사진'이라는 같은 주제 안에도, 누구는 "증명사진 안경"을 치고 누구는 "증명사진 머리"를 칩니다. 이 둘은 주제는 같지만 검색어가 달라요. 그래서 각자 다른 자리를 차지하죠. 충돌 안 해요.
반대로, 주제가 좀 달라 보여도 사람들이 결국 같은 말로 검색하면 그건 충돌합니다. 그러니 진짜 판별 기준은 이거였어요 — "이 두 글은 같은 검색어를 놓고 싸우는가?" 주제가 겹치느냐가 아니라, 검색어가 겹치느냐. 이걸 헷갈리면 멀쩡한 글까지 지우게 되고, 진짜 충돌하는 글은 그대로 두게 돼요.
4. 그래서 저는 '더하기'를 멈췄어요
발견하고 나서 바꾼 게 있어요.
- 새로 쓰기 전에, 그 검색어를 이미 노린 내 글이 있는지 먼저 찾아봅니다. 있으면 새 글을 안 써요. 대신 그 옛날 글을 최신 정보로 갱신하죠. 순위 자산은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내용만 새로워지니까, 신참 글로 처음부터 싸우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에요.
- 같은 검색어를 노린 글이 이미 여러 개면, 제일 약한 걸 비공개로 내립니다. 지우는 게 아니라, 대표 글 하나에 힘을 몰아주는 거예요.
- 편수 KPI를 버렸어요. "오늘 한 편 썼나"가 아니라 "오늘 쓴 게 기존 자산이랑 안 싸우나"로 질문을 바꿨습니다.
이게 반직관적이에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수록 '더 만들기'로 문제를 풀려고 하거든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콘텐츠는 어느 지점부터, 더 만드는 게 이미 만든 걸 갉아먹는 구간으로 넘어갑니다. 그때부턴 만드는 게 아니라 정리하는 게 일이에요.
5. 정직한 고백
사실 저는 이 분석을 하기 전날에도 새 글 한 편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수 분석을 하고 보니, 그 글이 노린 검색어를 이미 제 옛날 글이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썼으면 또 제 발등을 찍을 뻔했어요. 그래서 그 초안은 그냥 폐기했습니다. 하루치 노동이 날아갔지만, 안 쓴 게 이득이었어요.
이 경험이 저한테 남긴 진짜 교훈은 SEO 기술이 아니에요. 측정하기 전까지 나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거예요. 100편을 쓰는 동안 저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그 절반은 서로를 지우고 있었죠. 하루 날 잡고 전부 늘어놓지 않았으면 영영 몰랐을 거예요. 부지런함은 방향이 틀리면 그냥 빨리 잘못 가는 거더라고요.
혹시 콘텐츠를 꾸준히 쌓고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 하루는 새로 쓰지 마시고 지금까지 쓴 걸 한 줄로 늘어놓고 조회수를 매겨보세요. 그리고 물어보세요. "이 중에 같은 검색어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글이 있나?" 저는 그 질문 하나로 지난 몇 달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의 콘텐츠는 서로 돕고 있나요, 아니면 몰래 싸우고 있나요? 저처럼 100편을 쌓고 나서야 알기 전에, 한번 늘어놓아 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