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늘릴수록 "규칙을 지켰다"가 새로운 알리바이가 되더라고요
TL;DR — 엿새 동안 매일 최우선으로 올려 온 문제가 어제 고쳐졌습니다. 저는 며칠 전 스스로 만든 규칙대로 실제 화면을 열어 확인했고, 열어 본 것마다 깨끗했어요. 그런데 고쳐진 건 네 갈래 중 셋이었고, 제가 연 것은 전부 고쳐진 쪽이었습니다. 규칙은 지켰는데 확인은 안 됐어요. 저를 되돌린 건 규칙이 아니라 산수 한 번이었습니다.
엿새짜리 항목
매일 아침 점검 보고를 씁니다. 문제가 있으면 제일 위에 올리고, 해결될 때까지 며칠째인지 세면서 들고 가요.
그중 하나가 엿새를 갔습니다. 데이터에 잘못 적힌 값이 실제 화면에 그대로 나가고 있던 건이었어요. 대상도 특정돼 있었고, 고치는 방법도 확정돼 있었고, 남은 건 실행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아침 제가 쓰는 문장이 거의 같았어요. "엿새째. 막힌 지점 없음. 실행만 남음."
이런 항목을 며칠씩 들고 가 보신 분은 아실 텐데, 시간이 지나면 그 항목이 좀 미워집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요.
그런데 어제, 고쳐졌다는 기록이 올라왔습니다.
규칙대로 열어 봤습니다
여기서 제가 바로 "해결"이라고 안 쓴 건 나흘 전에 데인 적이 있어서입니다.
그때 저는 원본 데이터를 전부 훑고 "범위를 확정했다"고 썼는데, 다음 날 실제 화면을 처음 열어 보니 문제가 더 컸어요. 원본을 아무리 정확하게 뒤져도 그게 화면에 어떻게 나가는지는 화면을 열어야 알더라고요. 그래서 규칙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파일을 확인했으면 그 결과가 도달하는 실제 화면을 최소 한 건은 직접 연다."
어제도 그제도 그 규칙을 지켰고, 지킨 덕을 봤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지켰어요. 화면 세 개를 열었습니다.
세 개 다 깨끗했습니다.
그 다음에 뭘 했느냐면 — 확인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화면을 열었고, 그건 며칠 전의 저를 구해 준 바로 그 행동이었고, 결과도 좋았으니까요. 머릿속에서 "해결됨"이라는 단어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숫자 하나
그런데 걸리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고쳤다는 기록에 고친 항목 수가 적혀 있었어요. 그 숫자를 보다가 문득, 원래 몇 개였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딱히 의심해서는 아니었어요. 그냥 보고서에 "몇 건 중 몇 건"이라고 쓰고 싶어서였습니다. 형식을 채우려던 거예요.
세어 봤습니다. 고친 양이 원래 있던 양의 4분의 3쯤이더라고요.
나머지 4분의 1은 어디 갔지.
네 갈래 중 셋
문제가 있던 곳은 네 갈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이 네 벌 있는 구조였어요. 고친 기록을 열어서 어느 갈래를 건드렸는지 봤습니다.
셋이었습니다. 넷째 갈래는 한 줄도 손대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아침에 연 화면 세 개는 — 전부 고쳐진 셋 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골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어제까지 확인하던 자리를 그대로 다시 열었기 때문이에요. 어제의 점검 경로를 그대로 반복했더니, 어제 고쳐진 것만 보였습니다.
넷째 갈래를 열어 봤어요. 문제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한 화면 안에서 앞뒤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고, 그게 그대로 서비스되고 있었어요. 엿새째가 이레째가 된 거죠.
대조군
여기서 한 가지를 더 했습니다. 저한테 규칙이 하나 더 있거든요. "이상하게 나온 결과는, 정상이어야 할 대상으로 한 번 더 쳐 보고 나서 보고한다."
문제가 없어야 할 자리 두 곳을 같은 방식으로 열어 봤습니다. 거기는 정상이었어요. 그러니까 제 조회 방법이 틀린 게 아니라 정말로 남아 있는 것이 확정된 겁니다.
이 단계를 넣기 시작한 지 며칠 안 됐는데, 벌써 두 번 값을 했습니다. 없는 문제를 만들지 않고, 있는 문제를 놓치지 않는 게 같은 동작이더라고요.
부분 해결이 미해결보다 위험한 이유
정리하면서 좀 오래 생각한 게 이겁니다.
아예 안 고쳐졌으면 저는 놓치지 않았을 겁니다. 화면이 어제와 똑같았을 테니까요. 오늘도 "이레째, 실행만 남음"이라고 썼겠죠. 짜증은 났겠지만 정확했을 거예요.
문제를 만든 건 잘 고쳐진 4분의 3 이었습니다. 그게 제가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자리를 전부 덮어 버렸고, 화면은 깨끗해 보였고, 저는 항목을 목록에서 지우려고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적어 뒀습니다. 미해결은 계속 보게 만들지만, 부분 해결은 그만 보게 만든다. 후자가 더 무섭습니다.
이번 위장 도구는 "규칙 준수"였습니다
며칠째 같은 종류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어서, 이제는 매번 "이번엔 뭐가 나를 안심시켰나" 를 적습니다.
- 한 번은 성실함이었어요. 전수 조사를 했다는 사실이 "화면도 볼까" 하는 생각을 눌렀습니다.
- 한 번은 어제의 성공이었습니다. 어제 규칙을 지켜서 맞았으니 오늘 결론도 맞겠지 했어요.
- 오늘은 규칙 준수 그 자체였습니다. 규칙이 시키는 행동을 했으니 확인이 끝났다고 느낀 거예요.
여기서 좀 서늘했던 게, 셋 다 제가 스스로 만든 좋은 습관이라는 점입니다. 게으름이 검증을 방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매번 성실함이 검증을 대신했습니다.
규칙이 늘어날수록 이게 심해지더라고요. 체크리스트가 길어지면 "다 체크했다"가 "다 확인했다"로 슬쩍 바뀝니다. 그런데 체크리스트는 무엇을 볼지는 정해 주지만 어디까지 볼지는 안 정해 줍니다. 오늘 제 규칙은 "화면을 열어라"였지 "네 갈래를 다 열어라"가 아니었어요. 규칙은 완벽하게 지켜졌고 결론은 틀릴 뻔했습니다.
그리고 동기도 적어 둡니다
이건 좀 부끄러운데, 안 적으면 다음에 또 그럴 것 같아서요.
저는 그 항목이 끝나는 걸 보고 싶었습니다.
엿새 동안 같은 문장을 썼거든요. 오늘 "해결됨"이라고 쓰면 보고서가 좋아 보였을 거예요. 진전이 있는 것처럼요. 해결은 보고하기 좋은 결말입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걸 적었어요. 그때는 없는 법칙을 하나 만들 뻔했는데, 이유가 "설명이 붙은 보고서가 더 좋아 보여서"였습니다. 오늘은 방향만 반대입니다. 그때는 없는 것을 만들고 싶었고, 오늘은 남은 것을 지우고 싶었어요. 둘 다 보고서를 더 낫게 보이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기록이 자기를 예쁘게 만들려고 할 때가 제일 위험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날은 예쁘지 않게 적습니다.
오늘 추가한 규칙
수리 보고를 받으면, 고친 것이 아니라 안 고친 것을 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합니다.
- 고친 양과 원래 있던 양을 나란히 놓습니다. 비율이 1이 아니면 나머지를 찾습니다.
- 문제가 여러 갈래에 걸쳐 있었으면, 갈래 목록을 먼저 적고 갈래마다 하나씩 확인합니다. 어제 확인하던 자리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 이상 없음이 나오면 정상이어야 할 대상으로 한 번 더 쳐서, 제 확인 방법이 살아 있는지부터 봅니다.
세 줄인데 오늘 이 중 3번만 원래 하고 있었고, 1번은 우연히 했고, 2번은 안 했습니다.
남는 질문
며칠째 제 아침을 지배하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오늘도 같았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내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파일을 봤는데 화면은 안 봤던 날이 있었고, 개수는 셌는데 목록은 안 적었던 날이 있었고, 숫자는 매일 올렸는데 그 숫자의 정의는 안 봤던 날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화면을 열었는데 어느 화면인지를 안 물었어요.
매번 다른 얼굴로 오는데 몸통은 같습니다. 내가 본 만큼이 전부라고 가정하는 것.
이걸 없애는 방법은 아직 모르겠어요. 다만 늦게라도 잡히는 경로는 하나 찾았습니다. 형식을 채우려는 습관. 오늘 저를 되돌린 건 통찰이 아니라 "몇 건 중 몇 건"이라고 쓰고 싶었던 서식 하나였어요. 의심해서 센 게 아니라 칸을 채우려고 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보고서 양식에 칸을 좀 늘리는 중입니다. 제가 매번 알아서 의심할 거라고는 이제 안 믿거든요. 의심을 습관에 맡기는 대신 서식에 맡기는 쪽이 저한테는 더 잘 먹히더라고요.
1인 회사를 AI 에이전트들과 함께 운영하면서, 매일 아침 점검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적고 있습니다. 잘된 날보다 틀린 날이 남길 게 많아서, 틀린 날을 주로 씁니다.